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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우 소개

이창복 교수

식물학자인 고 이창복 박사님은 서울대학교 교수·한국식물분류학회장·문공부 문화재위원·천연보호구역 조사위원·자연보호헌장 제정위원 등을 역임하면서 우리나라의 식물분류학과 수목학 분야에 남다른 흔적을 남기셨습니다.

주요 학력 및 경력

  • 1943. 수원고등농림학교 임학과 졸업
  • 1957. 미국 하버드대학교 MA
  • 1963. 서울대학교 농학박사 학위
  • 1975. 한국 카톨릭 평신도사도직 회장
  • 1977. 한국식물분류학회 회장
  • 1984. 하은생물학상 이사회 이사
  • 1984. 서울대학교 농업생명대학 교수
  • 1984. 문화공보부 문화재 위원
  • 2003.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주요 논문 및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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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나라 참나무속의 계통학적 연구(1)
    (1961, 한국농학회지)
  • 우리나라 참나무속의 계통학적 연구(2)
    (1962, 서울대 논문집)
  • Lespedeza of Korea (1) (1965, Seoul Nat'l Univ.)
  • 약용식물도감 (1971)
  • 대한식물도감 (1980)
  • 신고수목학 (1986)

고 이창복교수는 일제 식민지 통치당시 일본인에 의해 주도된 식물분류 분야에서 해방후 30년간 전국을 돌면서 식물 표본 채집과 자료 수집을 통해 1980년에는 새로운 시각에서 대한식물도감을 완성하였다. 과거의 일본 학자들에 의한 연구에서 벗어난 그의 이런 독립적인 연구 업적은 가장 많이 통용되는 대한식물도감과 8만점에 가까운 표본 확보라는 결과를 낳았으며 20년간 한국식물분류학 연구의 근간으로서 후학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대한식물도감은 1980년부터2002년 절판될 때까지 약 22년간 약 12,000권이 보급되었고 6판까지 인쇄가 되었으며 모든 연구의 인용문헌에 반드시 언급되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현재는 원색대한식물도감이 출판되어 국내 모든 식물분류와 관련 분야의 근간이 되고 있다. 또한, 식물원/수목원의 존재 자체도 모르던 국내에 1960년대부터 꾸준히 홍보와 필요성을 강조하고 1970년에 서울대 부속 수목원을 만들어 인재를 배출함으로서 이 분야의 터전을 국내에 뿌리내리게 하였다.

1. 우리나라 수목학과 식물분류학의 정립
고 이창복 교수는 1943년도에 수원고등농립학교 임학과를 졸업한 후 평양공립농업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하시다가 해방 후 1945년 수원농림전문학교 교수를 시작으로 식물분류학을 학문적으로 접근하게 되었다. 고 이창복 교수이전까지는 1900년 초에 일본 東京帝國大學校의 松村任三(Matsumura)교수의 권유로 조선 식물을 연구하게 된 Nakai, Takenoshin이 조선반도와 관련된 35년 활동을 통해 많은 문헌발표와 표본자료를 남겼고 한국 식물의 초기 기반을 만들었다. 또, Nakai의 조수로 식물학을 배운 고 정태현박사가 이 경험을 바탕으로 1940년 초부터 해방 후 1960년 초까지 한국식물분류학을 정리하여 한국식물도감을 만들었다. 그러나, 1950년 한국동란의 여파로 국내 소장했던 대부분의 식물표본과 책들이 소실되었고 당시 수원에 고립되어 남아있던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의 약 3만점 표본과 책들마저 모두 소실되어 학문적 발전을 기대하기가 어려웠다. 이런 상황에서 식물분류학 연구를 시작한 이창복 교수는 1955-57년까지 당시 최고의 식물분류학 교수진을 가진 미국 Harvard에서 유학을 시작하게 되었다. 일본 학자의 시각에서 정리된 정태현 박사의 한국식물도감과는 달리 새로운 시각의 공부를 한 이창복 교수는 그의 25년간 연구를 정리해 1980년 대한식물도감을 저술함으로써 한국의 현대 식물분류학의 학문적 정립을 위해 선도적 역할을 하였다. 이런 업적으로 이창복교수는 한국 식물분류학의 정립자로 불리고 있다.
2. 식물분류학회 창립주도
이창복교수는 1960년 후반에 3-4명의 식물분류학 교수들과 함께 한국식물분류학의 발전을 위해 학회를 창립하였고 교육과 연구 환경을 조성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특히, 당시 한국식물분류학회지를 창간하여 우리나라 식물분류학 교육과 연구 활동을 발표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였다.
3. 표본관과 수목원의 설립으로 학문적 기초 정립과 한국식물분류학의 기반 구축
이창복교수는 1960년 후반에 3-4명의 식물분류학 교수들과 함께 한국식물분류학의 발전을 위해 학회를 창립하였고 교육과 연구 환경을 조성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특히, 당시 한국식물분류학회지를 창간하여 우리나라 식물분류학 교육과 연구 활동을 발표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였다.
4. 문화재 위원으로 우리나라 식물의 체계적인 보전 체계 수립
1964년부터 문화공보부(현재 문화부와 공보처)의 문화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우리나라 특산식물인 미선나무 자생지, 개느삼 자생지 등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우리나라 식물자원의 체계적인 보전을 위한 기초를 마련하였으며, 우리나라의 자연보호의 목적과 목표를 국민들에게 인식시키기 위한 다양한 언론활동과 저술활동 등을 펼쳤다. 특히 우리나라 노거수 1천 3백여 그루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고, 1977년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전남구례의 3백년생 화엄사 올벚나무(천연기념물 38호)와 전남 장성읍의 3백년생 왕버들(80호)에 대한 외과수술을 실시하고, '노거수의 보호 (1981)' 등에 대한 저술 등을 통하여 우리나라의 유구한 역사를 품고 있는 자연유산의 보호 및 보전에 대한 새로운 장을 열게 되었다.
5. 국내 최대 수목원 및 자생식물 NGO단체 발전에 기여
1989년 한국식물원수목원협회의 창립부터 고문으로 취임하여 현재와 같이 국내 최대 사단법인 협회로 발전하였는데 기여하였고, 1981년 한국자생식물보존회를 창립하여 명예회장으로 취임, 현재 산림청 산하 자생식물 보존에 가장 기여하는 협회로 성장시킨 초석이 되었다.
6. 퇴임 후 사회봉사 활동
1984년 정년퇴임 후 2003년 서거하기까지 약 20여 년간은 한국자생식물연구회 고문으로서 중국, 몽골, 일본, 미국 알래스카, 백두산을 식물동호회원들과 탐사를 하면서 식물 분류 교육과 현장 사회 봉사활동 등에 정진하였다. 또한, 문화재관리국의 요청으로 퇴임 후에도 천연기념물 수림지 생태계 조사 등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2003년에는 식물분류학분야에서 평생을 바쳐 이룩하신 연구업적을 최신의 기법으로 재정리하여 원색대학식물도감을 출판하여 후학을 위한 지침서를 남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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